핵심역량 · Core Competence
Core Competence
핵심역량이란?
- 제품이 아니라 그 밑의 '뿌리' 능력
- 가치·모방난이도·확장성 3조건
- 신사업 방향의 나침반
핵심역량 논의가 실제로 바꾸는 것은 조직도를 읽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업을 하는가'로 시작하던 회의가 '우리는 어떤 능력을 팔고 있는가'로 옮겨 갑니다. 이 전환이 일어나면 사업부 단위로 잘려 있던 회사를 능력 단위로 다시 자르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한 사업부에 묶여 있던 설계 인력이 전사 자산으로 재분류되고, 매출은 작아도 그 능력을 키워주는 사업이 살아남습니다. 결국 예산과 우수 인재가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가 달라지는 것이 이 논의의 실질적인 결과입니다.
세 관문을 통과해야 핵심역량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고객이 돈을 내는 이유에 직접 닿아 있는가, 경쟁사가 3년 안에 따라오기 어려운가,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여러 시장으로 옮겨 갈 수 있는가. 실무에서는 세 번째에서 가장 많이 걸러집니다. 특정 고객사 한 곳에서만 통하는 대응력은 잘하는 일이긴 해도 핵심역량은 아닙니다. 프라할라드와 하멜도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세계 수준으로 키울 수 있는 역량은 대여섯 개를 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개수를 줄이지 못하면 선언만 남고 자원 배분은 그대로입니다.
인접 개념과 선을 그어두면 논의가 빨라집니다. 핵심성공요인(KSF)은 그 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구나 갖춰야 하는 조건이라 차별화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VRIO의 자원이 '무엇을 갖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핵심역량은 여러 자원을 엮어 반복해서 성과를 내는 방식을 묻습니다. 설비와 특허는 사고팔 수 있지만 그것을 다루는 사람·공정·의사결정 습관의 결합은 거래되지 않습니다. 경쟁사가 같은 장비를 들여놓고도 수율을 못 맞추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자주 어긋나는 지점은 목록이 열 개를 넘어가는 순간입니다. '품질이 좋다', '납기를 지킨다'까지 올려두면 아무것도 고르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더 위험한 쪽은 매출 큰 사업부의 능력을 사후에 핵심역량으로 승인해주는 경우로, 이때 문서는 현상 유지의 알리바이가 됩니다. 반대 방향의 사고도 흔합니다. 원가 절감 과제에서 '비핵심'으로 분류해 외주로 넘긴 공정이 실은 뿌리였던 경우인데, 몇 년 뒤 그 기술을 다시 들여오려 하면 사람도 데이터도 남아 있지 않고 협력사가 경쟁사가 되어 돌아옵니다.
C.K. 프라할라드와 게리 하멜이 1990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논문 「The Core Competence of the Corporation」에서 제시했습니다.
가상의 사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연매출 1,400억 원, 임직원 320명 규모의 자동차 부품 2차 협력사 A사는 최근 3년간 전장 모듈·물류 자동화·산업용 히터 세 개 신사업에 도합 80억 원을 넣고 모두 철수했습니다. 대표는 경영회의에서 "되는 건 다 해봤는데 왜 남는 게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전략기획팀이 8주짜리 핵심역량 진단에 들어갔습니다.
- 전략기획팀장이 사업부장 11명에게 '우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을 받아보니 37개가 올라왔고, 그중 22개가 품질·납기·대응 속도처럼 어느 회사나 쓰는 말이었습니다.
- 영업본부장이 주요 고객사 구매팀 6곳을 직접 돌았습니다. 다섯 곳이 재발주 이유로 "도면이 바뀌어도 2주 안에 금형 수정해서 샘플을 준다"를 꼽았습니다.
- 생산기술 수석이 그 속도의 출처를 뜯어보니 설비가 아니라, 금형 설계팀과 시험 공정을 한 층에 붙여두고 쌓은 15년치 수정 이력 데이터였습니다. 장비를 사도 복제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 철수한 신사업 세 건을 그 기준으로 다시 보니 이 능력을 쓴 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표는 "우리는 시장을 보고 들어갔지 뿌리를 보고 들어간 게 아니었다"고 정리했습니다.
- 역량을 '다품종 소량 금형 개발 속도' 하나로 좁히고 R&D 예산의 60%와 설계 인력 9명을 재배치한 결과, 6개월 뒤 시제품 리드타임이 18일에서 11일로 줄고 의료기기 부품 신규 수주 2건, 24억 원이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