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담당자가 예전만큼 전화를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요즘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막상 문의가 들어오면 상대 회사 담당자가 우리 제품의 가격 구조와 경쟁사 비교표까지 정리해서 옵니다. 초기 문의는 줄었는데, 들어온 문의의 질문 수준은 오히려 올라간 것입니다.
구매 담당자가 갑자기 부지런해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이 하던 초기 조사 단계가 에이전트 AI로 옮겨간 결과에 가까워 보입니다. 우리 쪽 영업도 리서치를 AI에 맡기는 곳이 늘고 있으니, 실질적으로는 양쪽의 AI가 먼저 만나고 사람은 나중에 만나는 구조로 가고 있는 셈입니다.
걸러내는 단계에, 우리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구매 담당자가 후보 업체 여러 곳에 팩스와 메일, 전화를 돌려 개요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 개요 파악을 AI에게 시키고, 걸러낸 소수에만 연락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걸러내는 단계에 참여할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고객사의 RFP나 견적 요청에 보내는 첫 답장은 우리 강점을 직접 설명할 기회였습니다. 그 기회가 줄어들고, 대신 웹에 남아 있는 문서와 기록이 우리를 대신해 말합니다.
첫 상담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이미 끝나 있을 수 있습니다.
B2C, B2B, B2G, D2C… 그리고 B2A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파는 대상을 기준으로 사업을 나눠 왔습니다. 개인에게 팔면 B2C, 기업에 팔면 B2B, 정부와 공공기관에 팔면 B2G, 중간 유통을 건너뛰면 D2C입니다. 서로 다른 전략처럼 보였지만 공통된 전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결국 사람을 설득하는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회사를 먼저 읽고 판단하는 주체가 바뀝니다. 저는 이 변화를 B2A(Business to Agent AI)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상대 기업의 '사람'이 아니라, 그 기업이 쓰는 '에이전트 AI'를 첫 번째 고객 접점으로 놓고 영업과 마케팅을 설계하는 활동입니다.
다섯 번째 분류라고 부르기엔 이르다고 보실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접점의 순서가 바뀐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위기라기보다,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AI는 전화해서 물어보지 않습니다
AI 도구는 우리 회사를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읽을 수 있는 것만 읽습니다. 홈페이지 소개 문구, 채용 공고, 보도자료, 고객사 후기, 커뮤니티 글, 채용 사이트의 회사 리뷰까지. 영업 담당자가 말로 채워 넣던 맥락은, 문서에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됩니다.
홈페이지에 '최고의 솔루션', '고객 중심' 같은 문장만 있고 정량적인 적용 범위와 연동 시스템 이름, 가격 산정 방식이 없다고 해봅시다. 사람은 '전화해서 물어보자'고 생각합니다. AI는 '정보 부족'으로 판단하고 다음 후보로 넘어갈 뿐입니다.
애매하게 써두고 상담에서 풀어내는 전략이, 이 구간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가장 빠른 진단은, 직접 물어보는 것입니다
거창한 도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AI 챗봇을 열고 세 번만 물어보시면 됩니다.
- 카테고리로 묻기 — '국내 OO 솔루션 업체를 비교해 달라'고 질문합니다. 우리 회사가 언급되는지부터 봅니다.
- 회사명으로 묻기 — 회사명을 넣어 강점과 약점, 주요 고객사를 물어봅니다. 지금 우리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가 나옵니다.
- 경쟁사와 비교하기 — 경쟁사 이름으로 같은 질문을 해서 서술 분량과 구체성을 견줍니다.
해보시면 아예 언급되지 않거나, 오래된 정보가 나오거나, 경쟁사 설명에 우리 특징이 섞여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다음 할 일은 그 격차를 문서로 메우는 작업입니다. 적용 업종과 규모를 명시하고, 연동 시스템을 실명으로 적고, 가격 산정 기준을 공개하고, 최근 1년 안의 사례를 세 건쯤 정리해 두는 일입니다.
이 작업은 SEO와 겹치지만 목적이 다릅니다. 순위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인용될 문장을 만드는 일입니다. 요즘은 이것을 AEO(답변 엔진 최적화), GEO(생성형 엔진 최적화)라고 부릅니다.
저는 홈페이지를 세 세대에 걸쳐 직접 만들어 왔습니다. 나모 웹에디터와 프런트페이지로 시작해서, 워드프레스와 아임웹을 거쳤고, 지금 보고 계신 이 홈페이지는 클로드 코드로 직접 만들었습니다. AEO와 GEO도 대화로 붙였고, AI가 읽어가라고 만든 llms.txt 파일도 실제로 적용해 두었습니다. 매일 확인하는 통계에서 AI 봇의 유입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이 관측됩니다. 숫자를 공개할 만큼 정제된 데이터는 아직 아니지만, 방향은 뚜렷합니다.
조심할 것 세 가지
첫째, 검증 없는 인용. AI가 정리해 준 정보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섞여 있고, 그걸 미팅에서 그대로 말하면 신뢰가 한 번에 깎입니다. 임원 이름, 도입 시스템, 투자 이력이 특히 잘 틀립니다.
둘째, 대량 발송. 받는 쪽도 AI로 걸러내는 경우가 늘고 있어,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도메인 평판만 상할 수 있습니다.
셋째, 역할 경계. 리서치와 초안은 AI에 넘기되, 가격 협의와 조건 조정은 사람이 합니다. 이 경계를 머릿속이 아니라 문서로 적어 두어야 팀 전체가 같은 선을 지킵니다.
'확인하지 않은 정보는 말하지 않는다.' 이 한 줄이 지금 시점에 가장 값싼 안전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점검해 볼 여섯 가지
- 우리 카테고리를 묻는 질문에 우리 회사가 언급됩니까?
- 적용 업종과 규모, 연동 시스템이 이름으로 적혀 있습니까?
- 가격이든 산정 기준이든, 판단에 쓸 숫자가 공개돼 있습니까?
- 최근 1년 안의 사례가 세 건 이상 정리돼 있습니까?
- 영업팀의 사전조사 양식이 담당자마다 다르지 않고 하나로 통일돼 있습니까?
- AI가 정리한 정보를 어디까지 쓸지에 대한 규칙이 문서로 있습니까?
여섯 개 중 셋 이상이 '아니오'라면, 새 도구를 도입하는 것보다 문서를 정비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도구는 나중에 붙여도 되지만, 읽을 것이 없으면 어떤 도구를 붙여도 읽히지 않습니다.
첫 고객은 이제 에이전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구보다 문서가 먼저입니다.
저는 이 주제를 B2A 교육과정(4시간)으로 정리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위의 3단계 진단과 제품 페이지 격차 점검, 사전조사 표준화, 30·60·90일 로드맵까지 네 번의 실습으로 직접 작성하는 과정입니다. 사내 교육을 검토 중이시라면 문의 페이지로 편하게 연락 주세요.
다음 편에서는 마케팅 쪽을 더 깊이 다뤄 보려 합니다. '인용될 문장은 어떻게 쓰는가' — Before/After로 정리해 보겠습니다.